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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에 드리워진 선진국 국가부채의 그림자 E-Brief

 

글로벌 경제에 드리워진 선진국 국가부채의 그림자

 

 

국가부채 위기는 호황기 직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호황기의 낙관적인 분위기 하에서 국가간의 자본 이동이 확대되다가 금융 상황 변화로 선진국들이 긴축기조로 돌아설 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재정위기가 과거의 국가부도 상황과 구별되는 점은 민간부문의 부채문제가 정부로 이전되었다는 점, 그리고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이 주된 위기대상국이라는 점이다. 현재 재정위기는 선진국 부도를 막기 위한 국제기관 및 국가들의 협력으로 단기간 내에 심각한 부도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누적된 높은 부채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는 디레버리지에 따른 세계경제 성장의 저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가부채 위기의 당사국들이 이제까지 세계시장에서 상품 수요국으로 역할을 해 온 선진국이란 점에서 과거 국가부채 위기들에 비해 그 영향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경기둔화 과정에서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위기가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러한 위기 상황은 부채문제가 심각한 나라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부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민간부문 부채 비중이 높아 장기적 관점에서의 주의가 요구된다.

 

 

 

< 목 차 >

 

1. 과거 국가부도 위기의 발생 배경

2.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의 특징

3. 향후 국가부채 위기의 전개방향

4. 국가부채 위기의 주요 대상국

5. 시사점

 

 

 

1. 과거 국가부도 위기의 발생 배경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대상국가들의 자구노력 안이나 국제기구, EU 차원의 지원대책이 발표되면 상황이 잠시 안정되다가 스페인 저축은행 부실이나 헝가리 재정적자 확대 등 관련된 리스크 요인들이 대두되면 또 불안이 시작되는 위태로운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국가부도 사태는 국가간 자금거래가 시작된 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알려진 최초의 국가부도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재정위기의 중심국인 그리스이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해상동맹의 도시정부들이 델로스 신전에 대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국가부도는 19세기 이후부터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산업혁명의 과실이 세계경제에 파급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 속도가 높아지고 산업의 설비집약도가 높아지면서 금융거래가 활발해진 데 따른 것이다. 실물자본의 축적이 자금 대부에 있어 담보의 역할을 하면서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자금대부가 크게 늘었고 이와 함께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사례도 늘기 시작했다. 1820년대에서 1840년대 사이 전세계 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바 있다(<그림 1> 참조).

 

 

20세기 들어 1,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당사국이 적대국에 대한 채무를 거부한 사례들을 제외하면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서는 두 차례의 대규모 국가부도 시기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대공황 기간으로 1931년과 32년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남미국가들이 국가부도를 맞았다.

 

이후 위기는 동유럽 및 남유럽 국가로 확산되었고 결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까지 부도에 이르렀다. 2차 대전 이후 잠잠해졌던 국가부도 사태는 80~90년대 다시 크게 늘었다. 1982년 멕시코 모라토리엄 선언을 필두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 대부분의 주요 중남미 국가들이 채무상환에 실패했으며 이후 아프리카 국과 1990년대 동아시아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동아시아국들은 대부분 직접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IMF로부터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위기 이전 국제 자본이동 활발

 

과거 대규모 국가부도 시기의 공통적인 특징들을 살펴보면 우선 위기 이전 기간 중 국가간 자본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원자재 생산국가들의 개발수요가 늘면서 선진국으로부터 개도국 정부에게로 자본의 흐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공황기 직전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호황이 국가간 자본이동을 촉진시키는 요인이었다. 선진국으로부터 식료품과 원자재 수요가 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남미 등 원자재 수출국들은 이에 기반해 사회간접자본 확대 등 경제개발 목적의 외채를 크게 늘렸다. 1928년 상당수의 남미 국가들의 수출대비 중앙정부 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 

 

한편 1980년대 위기는 선진국 내 금융 여건의 변화가 세계 자본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경우이다. 1970년대 고유가로 선진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자금수요가 줄어들게 되자 금융기관들은 개도국에의 자금 공급을 늘렸다. 특히 회사채 시장의 확대로 국내대출이 어려웠던 미국의 은행들이 중남미국들에 대한 차관을 적극적으로 확대시켰다.

 

사후적인 평가이지만 위기 당시 채권국이나 채무국 모두 경제상황을 과도하게 낙관한 나머지 위험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높은 원자재 가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함으로써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해외차입 규모를 크게 늘렸다. 또한 당시 국가간 대출금리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의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선진국의 금융기관들이 국가의 위험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금융긴축이 개도국 부채위기 촉발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의 자금 흐름은 선진국 금융위기 혹은 금융정책 기조의 중대한 변화 등을 계기로 방향이 반대로 바뀌게 된다. 대공황기에는 미 연준의 1929년 재할인율 인상 등 금융긴축이 주가폭락으로 이어져 공황의 촉매가 되었다.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 은행들은 해외대출 자금을 회수해 국내대출로 전환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개도국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1980년대 위기에는 금융위기는 아니었지만 선진국 금리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 개도국 대출이 급감했다.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 압력으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남미국가의 외채부담이 확대되었고 선진국 은행들의 중남미국에 대한 신규대출이 크게 줄었다(<그림 2> 참조). 세계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하락이 동반되면서 개도국들이 수출을 통해 채무를 상환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취약한 국가가 부도를 맞게 되면 비슷한 성향을 가진 국가로 부도가 빠르게 전파되곤 했다. 대공황기는 1931년과 32년 중에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와 그리스, 독일 등 유럽국가가 채무재조정을 겪었다. 1982년 멕시코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주변 국가로까지 국가부도 위기가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는 여러 국가들에 동시에 자금을 대출한 금융기관들이 한 국가의 부도위기 발생시 위험기피 경향이 확대되면서 인접 국가로부터도 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2.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의 특징

 


현재의 남유럽 재정위기는 PIGS 등 일부 국가의 방만한 재정운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20세기 국가부채 위기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부터의 세계경제 호황과 이 과정에서 누적된 과도한 부채에서 찾을 수 있다(<그림 3> 참조). 선진국의 저금리 기조와 함께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2000년대 세계경제는 평균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1%p 가량 늘어나는 초호황을 구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의 부채가 빠르게 늘었는데 이는 가계와 금융기관들이 자산가격 하락 리스크를 고려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이다. 인플레를 우려한 선진국 정부의 금리인상이 자산가격 하락을 촉발시켜 이후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위기로 이어졌다는 점도 과거 국가부채 위기와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부채가 정부부문으로 전이

 

과거의 국가부채 위기와 현재의 위기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에는 정부부채가 위기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민간 부문의 부채위기가 정부부문으로 옮겨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선진국에서는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었고 이것이 서브프라임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금융위기의 수습을 위한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인해 민간부채가 정부부문으로 이전되었다. 민간부채의 급격한 조정에 따른 경기침체를 재정적자를 통해 완화시키는 노력도 정부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또한 남유럽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계부실이 은행의 손실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자산이 축소된 금융기관들이 국채를 흡수하지 못하게 되자 정부의 해외 채권 발행이 늘어난 것도 민간부채 문제가 정부위기로 전이되는 경로가 되었다. 민간부문의 부채를 정부가 흡수하면서 금융위기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결국 선진국 정부도 경제주체들의 안전성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 위기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현재의 재정위기는 서브프라임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할 것이며 PIGS 등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2000년대 부채를 크게 늘리면서 성장한 국가들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일 것이다.

 

 

위기대상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위기가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선진국은 국가부채 위기를 졸업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 동안 일본, 북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국가부도 가능성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금융위기 기간 중 이들 국가들의 신용상태는 부도사태를 우려할 정도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그 동안 축적된 풍부한 실물 및 금융자본, 발전된 금융시스템 등으로 리스크에 대한 노출이 크지 않아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들에게 위험 대상으로 크게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위기 중 선진국이 시장의 안전판이 아니라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기존의 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0년대 부채의 절대 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는(insolvency)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EMU 체제의 한계로 평가절하를 통한 부채축소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선진국 부채문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서 남유럽 국가가 지목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개도국이 이번 위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은 1980~90년대와는 달리 2000년대에는 자본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로 축적된 외화를 선진국의 채권과 자산에 투자하면서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s) 현상을 이끌었다.

 

또한 과거 위기 경험을 통해 외환보유고를 축적시키고 외채확대를 지양하는 등 위기에 대한 안전판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었던 점도 개도국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선진국이 외채비중을 꾸준히 늘린 데 비해 개도국은 외채 비중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그림 4> 참조). 선진국이 국가부채 위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은 향후 위기의 전개방향이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해준다. 

 

 

 

 

3. 향후 국가부채 위기의 전개방향

 


고성장과 부채축소 공존하기 어려워

 

현 위기상황의 향후 진행경로를 예측해 보면 우선 실물경기나 금융시장에 별다른 충격 없이 수습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부도 위기를 겪지 않았던 선진국들은 부도에 따른 신뢰상실, 국제 자본시장에의 접근 제한 등의 부작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채무불이행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IMF 등 국제기관들도 자본확충 등을 통해 선진국 부도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과거 개도국 위기시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전개할 것이다. 선진국간 자금공여 등 국제 협력도 긴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부도위기를 피하면서 세계경제가 다시 고성장 추세로 복귀할 경우 세수확대를 통해 국가부채 부담이 점차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다. 즉 세계경제가 부채의 확대 없이 2000년대 중반과 같은 고성장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성장 과정에서 부채가 축소된 사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례가 제시된다. 당시 미국은 높은 성장을 유지하면서 전쟁 기간 동안 누적된 높은 국가 부채를 꾸준히 줄여나갈 수 있었다(<그림 5> 참조).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현재에 재현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면서도 고성장이 유지되었던 것은 전쟁기간 동안 군수물자 집중되었던 자원과 기술이 전쟁 종료 후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었지만 전쟁수행에 들어갔던 지출이 민간부문에 투입되면서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생산성의 빠른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부채상환이 지연되면서 성장이 다시 높아질 수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 저축률이 다시 낮아지면서 소비가 늘고 성장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단기적으로는 나타날 수 있지만 향후 추세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세에 비해 급격하게 높아진 부채수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며 이는 수요 둔화, 즉 성장하락이라는 대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상당기간 글로벌 경제회복에 부담 요인

 

다음으로 낮은 성장세가 상당기간 동안 지속되는 경로를 예상해볼 수 있다. 민간부문의 부채가 정부부문으로 이전되면서 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만큼 향후 부채의 축소과정은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에 동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 주요 선진국들은 GDP의 100%가 넘는 높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오랜 기간 소비를 절약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그리스, 스페인 등 위기의 직접적인 대상국뿐 아니라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재정적자를 축소할 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재정건전화 노력이 확대될 전망이다(<표 2> 참조). 

 

 

아시아 외환위기 시에는 급격히 절하된 환율로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전세계 경기의 하락폭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단기간 내 회복될 수 있었지만 전반적인 선진국 경제가 어려워질 경우 이러한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크루그만(Krugman) 교수도 환율조정을 통한 회복 메카니즘의 부재로 인해 미국경제가 일본의 장기불황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선진국에서 대규모 국가부도 혹은 금융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 그렇지만 부채조정 과정에서 선진국의 성장동력이 쉽게 살아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진국의 대규모 부도사태보다는 부채부담이 해소될 때까지 선진국 경제의 낮은 성장이 지속된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큰 경로인 것으로 생각된다. 개도국이 아직 세계수요를 이끌어갈 만한 규모가 되지 못한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세계경기 역시 2000년대에 비해 낮은 성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기 재발 및 국가부도 사태 발생 가능성

 

국가부도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부채 조정 과정에서 금융위기가 재발할 우려도 있다. 금융위기가 국가부채 위기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국가부채 위기 과정에서 상당수 국가들이 금융위기를 겪게 된다. 이는 국가부채 위기와 금융위기를 유발하는 원인들의 상당수가 공통되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상당수 유럽 금융기관들이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로 큰 손실을 입은 상태이고 또 미국과 유럽국가의 부동산 가격의 하락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스페인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서 보듯이 부동산 가격 거품이 심한 국가를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특히 실물경기의 부진이 심할수록 민간부문의 부실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성장률이 낮을수록 향후 채권자들이 느끼는 채무불이행 리스크가 커지게 될 것이고 이에 따른 자금의 회수 및 신규 대출 축소가 기업과 가계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사례로 볼 때 부채를 축소시키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금융위기가 수반되었다. 

 

금융위기 발생은 다시 국가부도 리스크를 확대시키게 될 것이다(<그림 6> 참조). 금융기관의 부실이 재차 정부부채로 이전될 뿐 아니라 위기에 따른 실물경기 급락으로 정부의 조세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과거 금융위기 사례를 보면 위기 발생 3년 후 실질 중앙정부 부채는 평균 86%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만약 이러한 위기 상황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일부 국가에만 한정된다면 이들 국가는 단기적으로 심각한 경기추락을 겪더라도 채무재조정 등을 통해 부채조정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이후 단기간 내에 회복에 이를 수도 있다. 외환위기시 동아시아가 겪었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위기의 발생이 다른 나라들, 특히 주요 선진국에 전염될 경우 세계경제는 대공황에 비견되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다른 지역으로 확산 우려

 

최근 국가부채 위기는 재정적자가 단기간 내 급등한 남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2000년대 들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총 부채가 크게 늘었고 이중 상당부분이 정부부채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채규모 측면에서 안심할 수 있는 국가들은 많지 않다. 특히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이는 투자자들의 위험기피 성향을 극대화시켜 부채위기가 다른 국가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 

 

정부의 대외부채 규모가 큰 국가들이 일차적인 대상이 되겠지만 민간부문의 부채가 큰 국가들도 국가부채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 민간부문 부채가 금융위기를 통해 정부부문에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부채의 비중이 높은 나라들도 국가부채 위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발생한 국가부도 사례 중 국내부채에 대한 부도 사례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으며 성장이나 물가에 미치는 충격들이 국내부채에 대한 부도의 경우에 더 크게 나타난다. 국내화폐로 발행되는 부채는 통화발행을 통해 상환될 수 있다는 점, 외국인 채권자들이 국가위험에 더 민감하다는 점 등 때문에 국내부채에 대한 채무불이행 위험이 대외부채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채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경우 국내투자자들의 국내자산 기피 및 해외자산으로의 도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에 따라 국채발행이 원활해지지 못해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개도국들이 다시 부채위기 전염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선진국에 비해 개도국의 부채규모가 크지 않지만 과거에도 개도국들은 낮은 부채 수준에서도 선진국들의 자금회수로 부도위기에 빠진 적이 있는 만큼 안심하기는 어렵다. 외채비중이 높거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국가들,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하락이 예상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부채위기의 표적이 될 수 있다.

 

 

 

4. 국가부채 위기의 주요 대상국

 


대외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시장 불신

 

국가부채 위험이 큰 나라들은 어디인지 선진국의 주요 지표들을 살펴보았다. 국가부채 리스크를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는 정부부채 규모이지만 국가부채 비중만으로 부채위기 리스크를 판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 그리스 사태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재정문제에서 촉발되긴 하였지만 결국 대외 지급불이행 리스크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외부채의 GDP 대비 비중을 보면 가장 높은 나라는 그리스인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7> 참조). 그리스는 정부부채 중 대내조달은 6.5%에 불과할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높다. 국내저축의 감소와 유로존 통합에 따른 역내 금융차입이 쉬워졌던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스는 2000년대 고성장기에 주택건설 등 투자가 급증한 반면 민간 저축이 줄어들면서 대외부채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늘었다. 다음으로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PIGS 국가들과 벨기에 등이 정부의 대외부채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국가부채 규모는 매우 크지만 국내부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단기간 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쌍둥이 적자국, 부채 위험국가로 분류가능

 

중기적으로는 재정수지나 경상수지가 국가부채 위기를 판정하는 보다 중요한 지표라고 판단된다(<그림 8> 참조). 재정 및 경상수지가 만성적으로 적자를 보인다는 것은 해당 국가가 잠재적인 성장 능력 이상으로 수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경직적인 환율제도나 파퓰리즘적 정책 성향 등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으로 환율이나 물가, 임금 등의 가격조정 기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재정수지와 경상수지의 추이를 비교하여 볼 때, 선진국 중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9개국인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9> 참조).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체크 등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동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 영국 등이 해당된다. 특히 유로존 국가가 6개국이나 포함되는데 이는 단일통화체제로 인하여 환율변동으로 대외불균형이 조정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섬유, 의복, 가죽제품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 비중이 높아 개도국과의 경쟁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왔고 노동비용 및 물가상승폭이 다른 유로국보다 높아 대외 경쟁력이 꾸준히 악화된 사례이다. 잠재적 성장능력이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수지 적자를 늘려 경상수지 적자기조가 지속된 사례이다. 

 

영국의 부채 상황도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2009년 영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12.2%에 달했는데 이는 영국의 금융산업 의존도가 높아 서브프라임 위기에 따른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유로국이 아니기 때문에 환율조정으로 대외불균형 문제는 해소될 수 있지만 높은 재정적자를 축소시키는 데 따른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금융산업의 성장이 제약되는 과정에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

 

 

민간부문의 부채가 높은 국가들도 잠재적 위험국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간부채와 정부부채의 구분은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다. 민간부채가 국가경제를 위협할 수준이 된다면 정부가 이를 책임질 것이기 때문이다. 비금융 기업과 가계 부채의 규모를 볼 때 GDP 대비 민간부채 비중이 300%를 넘는 국가는 총 8개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0> 참조).

 

 

남유럽 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은 정부부채 수준은 낮은 편이었으나 민간부문 부채 규모가 크고 또 부채증가의 속도도 빠르다.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역시 민간부채 수준이 높고 부채증가 속도가 빠른 국가군에 속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험국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자본구조 등에 따라 국가간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2000년대 민간부채가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볼 때 부채위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은 민간부채의 문제점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스페인은 주택가격 하락으로 가계 부문의 부채조정, 건설기업의 부실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카하수르(Cajasur) 은행의 국유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동산 버블기에 대출여신을 과도하게 늘려왔던 저축은행들의 부실이 큰 상황이다. 포르투갈 역시 민간부채는 GDP 대비 357.4%로 높은 편이며 매년 5.2%p씩 부채가 증가했다. 현재 정부부채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민간부채의 부실이 정부로 이전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도국, 대외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위험

 

개도국들의 경우 정부부채 규모나 대외부채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시장의 신뢰도가 낮고 환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작은 충격에도 자본의 유출입이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국가부채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선진국과의 직접적인 비교보다는 개도국간의 상호비교를 통해 위험여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대외부채 비율, 그리고 대외불균형 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자료비교가 가능한 개도국 중 GDP 대비 대외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국가들은 총 5개국인 것으로 나타나며, 대부분 동유럽 국가들이 이에 속한다(<그림 11> 참조).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IMF 구제금융을 받은 헝가리, 라트비아는 GDP 대비 대외부채 비율이 각각 174.3, 159.7%로 개도국 중 가장 높았다. IMF 지원을 받은 루마니아도 72.4%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들 동유럽 국가들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구조를 가지고 있어 대외불균형 역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반해 남미나 아시아 개도국들은 평균 30%대 초반의 GDP 대비 대외부채 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상수지 흑자국이어서 부채 위기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판단된다.

 

 

 

5. 시사점

 


현재 재정위기는 선진국 부도를 막기 위한 국제기관 및 국가들의 협력으로 단기간 내에 심각한 부도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누적된 높은 부채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는 디레버리지(deleverage)에 따른 세계경제 성장의 저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둔화 과정에서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위기가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러한 위기 상황은 부채문제가 심각한 나라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재정 지표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2009년 기준 정부부채는 GDP대비 33.2%로 낮은 편이며, 정부부채 중 대외부채 비율은 3.3%에 불과하여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경상수지 역시 2000년대 평균 1.8% 흑자를 보여왔으며, 환율제도 역시 외환위기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여 대외불균형 문제는 크지 않다. 

 

그러나 민간부채 문제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 및 비금융 기업부문의 민간부문 부채는 GDP대비 376%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였을 때 높은 수준이며, 부채 증가 속도 역시 빠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채구조가 상당히 건전해졌지만 2005년 이후 다시 늘어난 원인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부문의 빠른 증가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09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0년에 비해 1.47배 증가해 성장에 비해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기관의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아 단기간 내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이와 같이 빠른 가계부채 증가 추세가 지속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재정적자 문제도 아직 안심하기 어렵다. 2009년 GDP대비 -5.0%를 기록한 관리대상 수지를 정부가 점차 줄여갈 계획이지만, 중장기적인 성장 저하에 따른 세수기반의 축소와 고령화 추세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 및 연금지급 증대 등을 고려할 때 균형재정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재정건전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Source : LG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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