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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40대는 "제2의 방황기" Column & ETC.

위클리경향 831호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에 ‘회의’… 자신의 진정한 모습 찾아 나서

“개인적으로 소외감 같은 걸 많이 느껴요.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하는 질문을 매일 항상 하게 돼요. 사실 특별히 집에 돈이 있는 사람들 아니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회사 다닐 거예요. 처음에는 저도 안 그랬죠. 회사를 위해, 아니 나라를 위해 열심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재작년쯤부턴가, 그러니까 마흔 넘어서 이렇게 됐어요. 책임은 커지고 부담도 커지는데, 사회나 회사가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40대 남성 ㄱ)

“예전에는 아버지가 집안의 기둥이고 그야말로 가장이었잖아요. 근데 요즘은 그런 게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반적인 세태예요. 아내도 그렇고, 전에 아이한테 아버지가 왜 좋으냐고 물으니까 돈 벌어오니까 좋다고 하더라고요. 전에는 하다못해 형식적인 예의라도 갖춰서 균형을 잡았는데 요즘은 그것조차 유지되지 않으니 더욱 쓸쓸해요.”(40대 남성 ㄴ)


짙은 공허감·불안감·소외감 느껴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푸는 40대. 그러나 오히려 병만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경향신문>


땅거미가 가라앉은 지난 6월 16일 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는 삼삼오오 찾아온 40대 남성들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인권재단(이사장 박은정 서울대 교수)이 마련한 생활인권 대화마당 ‘알지(知)’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이날의 주제는 ‘한국 40대 직장남성들의 생활과 인권’이었다. 정유성 서강대 교수가 한국의 40대 남성에 대한 6개월간의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46·마인드프리즘 대표)도 참석해 40대 남성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한국인권재단이 40대 남성의 인권에 주목한 것은 ‘40대 남성 자살률 세계 1위,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한국 남성들이 봉착한 위기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현재 한국의 40대는 1961년생부터 1970년생까지다. 386세대 대다수가 이제는 40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386세대란 잘 알려졌다시피 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은 40대가 돼 한국사회의 중년세대를 이루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분포상 가장 숫자가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표 참조).

‘인생 40은 불혹(不惑:유혹에 정신이 흔들리지 않음)’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은 오랜 세월 동안 40대 중년의 대명사로 불려왔는데 어떤 학자는 이를 공자의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40대가 가장 흔들리는 시기이므로 경계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나이대의 대다수 남성은 짙은 공허감과 불안감, 소외감 등을 느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술, 여자, 도박 등에 쉽게 휘말린다.

그렇다면 40대는 왜 이렇게 방황하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라고 말했다. 40대 중년이 되면서 인간은 이전까지 외형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렬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30대까지만 해도 직업적 성취를 위해 집중해 쏟던 에너지를 40대가 되면 자신의 내부에 쏟아 붓게 된다고 한다. 정혜신 박사는 “남자들은 학력, 지위, 경력 등을 확보하거나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오다가 막상 중년이 되어 그것을 어느 정도 이루었을 때, 자신이 꿈꾸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비로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0대에 이르러 소울메이트를 포함, 지적 대화가 가능한 여자친구를 갈망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심리학자인 브뤼와 브레넌은 남성들은 중년이 되면 인간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정을 돌아보지만 이 시기에는 아내도 구원의 여성이 아니라는 현실을 마주치고 절망한다고 했다. 이에 40대 남성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으려고 방황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호르몬의 영향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중년이 되면 왕성하던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는 대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이 증가하면서 예민해지고 감성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중년 두렵지 않다>의 저자인 이미나 서울대 교수는 “에스트로젠이 증가하면서 중년남성들에게는 내면에 억압돼 있던 여성성이 발휘된다”며 “그들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감정적 요구를 의식해 자신을 인정해주고 친절하며 따뜻한 위로를 주는 정 많은 여성을 찾게 된다”고 전했다.

40대라면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을 10년 이상 해왔고, 자녀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일반 기업에 속해 있다면 과장 또는 부장의 자리에 올라 책임이 막중할 때다. 40대 돌연사가 많은 이유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유독 한국의 40대 사망률은 눈에 띄게 높다.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발악’을 하는 동안 구성원들의 삶의 질은 목적 달성을 위한 소모품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며 “근대화의 급물살 속에 우리 사회는 어느새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동안 써먹다가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고 새로 만들어 쓰는 부품들의 사회가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실제 오늘날의 40대가 사회에 진출할 무렵인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한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던 때다. 취업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면 된다’거나 ‘언젠가 상응하는 결과가 오겠지’ 하는 신념으로 청운의 꿈을 불사르며 산업역군으로 제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계기로 평생직장, 연공서열의 개념이 깨지고 말았다. 오늘의 중년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매서운 칼바람을 가장 뼈저리게 경험한 세대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오정(45세 정년)으로 상징되는 중년의 실업 문제는 이들을 위기로 몰고 있다”며 “이들은 경제적 기반을 미처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주기에 직면해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대비도 잘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실업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라고 저서 <중년의 사회학>에서 기술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매서움 경험


IMF 외환 위기는 한편으로 ‘믿을 건 실력뿐’이라는 도식을 갖게 했다.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밥줄인 조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밤낮을 잊고 회사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40대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회사는 더 이상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아님을. 그래서 그들은 ‘정리해고’ ‘명예퇴직’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회의를 느끼게 된다.

당연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과로와 그로 인한 만성피로, 스트레스는 한국의 40대 남성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 그러나 그들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술과 담배로 푸는 정도다. 문제는 가뜩이나 업무적으로 술자리가 많은 40대 남성에게 술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병만 키울 뿐이다. “뭐 한 2주일 업무 때문에 계속 술을 먹었는데, 이러다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랜 만에 가까운 친구들 만나 스트레스 풀려고 했더니 또 술을 먹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한 어느 40대 직장남성의 말은 40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자화상일 것이다.

정유성 교수는 “예컨대 비만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에 노출돼 암이나 뇌혈관, 심장질환과 같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릴 확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높을 뿐 아니라 같은 연령대 여성에 비해서도 아주 높다”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삶이나 생활방식이 모두 불 건강하고 만성 스트레스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40대 남성(40, 50대 남성 직장인 3.7%가 정신질환 경험)이 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몸과 마음이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40대 남성들이 인간관계에서의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마찬가지다.
정유성 교수는 “40대 직장남성을 심층 면접한 결과, 그들이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업무 자체 부담이라기보다 상사와 관계, 본사와 관계, 동료와 관계 등 주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40대 남성이 대부분 중견 간부급 직책이다 보니 업무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한 수준이라서, 오히려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간관계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또 “인터뷰 내용 중에는 직장 내 왕따에 대한 견해도 곁들여졌는데, 대부분 그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이고, 심지어 그럴 만해서 왕따당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미 정서적으로 이혼상태 상당수”

 존재의 위기, 관계의 위기에 내몰린 40대는 짙은 공허감과 불안감, 소외감에 시달린다. <경향신문>


문제는 상당수 40대 남성이 가정에서도 소외감에 시달리는 것. 이는 40대 이혼율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도 엿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사람 중 40~44세 남성이 2만2200건으로 가장 높았다. 정신과 전문의 정찬호 박사(44)는 “남편과 아내가 직장 업무로 인한 피로감 등으로 대화가 줄어든데다 아이 양육이나 교육 문제에서 의견 충돌까지 일면서 갈등이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40대 부부 중에는 법적 절차까지는 밟지 않더라도 이미 정서적으로는 이혼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자녀와 소통에서도 한국의 40대 남성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주로 자녀와 관계, 대화 단절, 교육 문제 등이다. 학자들은 이를 가부장 아래 오랜 세월 동안 뿌리내린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상은 사라졌지만 평등하고 조화로운 아버지 상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시대적 한계로 해석한다. 이와 관련해 정혜신 박사는 한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기업의 임원인 한 40대 가장은 자신이 자녀와 친구같이 지낸다는 확신에 나름대로 가정을 성공적으로 가꿔 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여고생인 딸의 일기를 우연히 읽고 큰 충격에 빠졌다는 것이다. 일기장에는 아빠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즐비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2005년 발표한 전국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50.8%는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고 답했다. 또 65.8%는 ‘자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을 자녀들에게 했을 때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아버지와 고민을 나눈다’는 자녀는 4%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40대 남성이 갖고 있는 이 같은 여러 가지 고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40대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내적 성장의 기회라는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에 목마름을 느끼는 이 시기를 반갑게 받아들이라”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소통에 노력하면 역할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기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심리적·정신적인 안정감을 갖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유성 교수는 “삶터의 틀을 ‘돌봄 사회’로 바꾸고 그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만들어감으로써 중년 남성들에게 감수성 훈련과 인간관계 훈련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찾을 수 있는 자리를 열어줘야 한다”며 “자연 속의 명상이나 체험, 지나치게 종교색을 띄지 않은 영성 프로그램, 봉사활동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86이 된 386세대는

386세대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국가총동원체제를 정비하던 박정희 정권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또 1980년대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던 암울한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대학생활 내내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며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이들은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이끈 주역이었다. 반미운동의 선봉이기도 했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중년의 사회학>에서 386세대를 가리켜 “다른 세대와 비교해 이념적이고 파괴적이었으며 진보적이었다”며 “비판의식과 현실 참여에 대한 열의,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이야말로 그들의 전매특허“라고 했다.

386세대는 근대적인 교육을 대규모로 받고 자란 세대기도 하다. 대학이 늘고 정원도 2배로 증가하면서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많은 사람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10대, 20대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 속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절대빈곤의 고통 속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다.

정성호 교수는 386세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돌, 형, 이념서적과 술, 컴퓨터, 비디오카메라, 배낭여행을 꼽았다. 돌은 시위문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형은 그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 여자후배가 남자선배를 부르던 호칭이다. 대학 시절 운동권 학생은 사회과학 계통의 서적을 커리큘럼에 따라 독파했으며 그로 인해 당시 사회과학서적이 넘쳐났다. 더불어 노래운동도 활발해 ‘동지가’ ‘광야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는 386세대의 필수곡이다.

386세대는 또 PC와 인터넷을 사용하고 이러한 IT기기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할 능력을 지닌 제1세대이며, 유학이 아닌 여행의 개념으로 배낭을 메고 해외로 나간 첫 세대다.
386세대가 다시금 주목 받은 건 2002년 대선이 계기가 됐다. 그해 12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은 6월항쟁을 이끈 386세대를 일약 시대의 주역으로 발 돋음 시켰다. 참여정부에도 대거 입성했다. 정 교수는 “이들의 활약에 대해 일부는 이를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경륜이 부족한데 너무 설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386세대는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에 몸으로 저항했던, 그야말로 절망의 조건 속에서 희망을 실현해낸 세대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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